일용할 양식/요한복음

그는 흥해야하고 나는 쇠해야합니다.

choibo 2024. 1. 11. 22:05

말씀: 요한복음 3:22-30

요절: 요한복음 3:30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베푸는데 사람들이 다 그리로 몰려갑니다. 제자들은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자신들에게 오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신랑되신 예수님의 친구로서 기쁨이 충만하다. 예수님이 잘 되는 것에 기쁨이 충만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세례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종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가?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흥해야하고 나는 쇠해야합니다. 나를 통해 예수님만이 높아져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도 높아지고 나도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잘되고 나도 잘되고 누이좋고 매부좋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나 매사에 이렇게 좋게만 끝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됩니다.

 

세례요한은 의롭고 강직하였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한 헤롯을 책망하였습니다.헤롯의 아내는 이에 원한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이용하여 요한의 목을 베게 합니다. 요한의 죽음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 영향력에 비하면 너무 허무하게 죽어갔습니다. 

 

바울을 생각할 때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일생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추운 감옥에서 고생하다가 결국 목이 잘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아니 그렇게 복음을 위해 충성하였는데 그 결과가 너무나 비참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가지 깨닳는 바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런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자신을 통해 예수님만이 높아지기를 바랐습니다. 만약 예수님도 흥하고 나도 흥하여야하리라 했으면 자신의 죽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는데도 힘들고 어려울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상한 일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닌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흥해야하겠고 나는 쇠하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세를 갖고 있으면 아무리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 생겨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감당할 힘이 생길 것입니다. 제가 이런 자세로 일생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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